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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선운사 육법공양팀 <윤도장인을 만나다 2> > 신도회 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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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선운사 육법공양팀 <윤도장인을 만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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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無相 작성일20-11-28 05:44 조회5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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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장(輪圖匠)-원 안에 삼라만상이 깃들다’>

윤도장 중요무형문화재 제110호 김종대, 전수교육조교 김희수/전수관 관람을 하다 



 제2부

 

-만드는 과정

모양 만들기정간하기각자하기색 입히기자침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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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장 중요무형문화재 제110호 김종대 부친과 전수교육조교 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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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 새기기/ 자석과 침>

 

군더더기

      

조선시대에 왜 윤도는 필수품이었는가  

-조선 사대부 남자들의 필수품, 윤도는 집터와 뫼자리 방향을 보는 데 부채 끝에 달고 다닐 만큼 중요시했다.

-윤도는 일상에서 방향을 잡는데 중요한 도구였으며, 심지어 아녀자들의 손거울이나 분첩에 윤도를 붙인 면경대(面鏡臺)로 가장실용적인 멋스러운 장식품이었다고 한다.

-현대적으로 네비게이션인 윤도장은 2007년 팅크웨어()아이나비를 통한 지정문화재(5,500여점) 위치정보 서비스 등 제공에 윤도장(輪圖匠, 중요무형문화재 제110)’ 전승지원 ‘1문화재 1지킴이협약도 체결한 바 있다.

 

어떻게 이 원 안에 동양철학을 담을 수 있지?  

-대추나무 안에 있는 심만을 사용하여 원을 만든다. 도대체 작은 원에 담긴 것이 무엇이었기에 4대째를 이어오고 있는 것인가? 바로 윤도에 새기는 무려 4,000여개 글씨이다.

-글자가 새겨지는 원 안에는 음양, 오행, 팔괘, 십간, 십이지 및 24절후(節侯)가 조합을 이루어 배치되는데, 이를 알지 못하면 윤도제작을 하지 못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도 조선시대에도 윤도제작은 흔치 않았다. 그야말로 장인정신이 없으면 만들 수 없는 심혼이 담겨있는 수공예 작업이다  

-이와 같이 우리 고유의 나침반 윤도는 우리 전통과 생활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음양오행과 24절기 등이 녹아있는 시간과 공간을 측정하는 도구였다.

-그러나 광복이후 윤도와 관련된 학문은 미신으로 치부되어 이 윤도를 모두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고 주로 지세(풍수)를 이용한 사람만 이용하였다.

 

왜 윤도의 장인으로 우리는 존경해야 하는가?  

-윤도는 길흉화복과 세계관이 담긴 생활 속 과학명품, 윤도는 손바닥안의 우주, 천문, 지리,철학이 담겨있지만 생활이 서구화 되고, 편하고 간편한 것만 찾는 요즘, 윤도는 그 명맥이 간신히 이어져 오고 있는 실정이다. 1대부터 4대 째 묵묵하게 나침반처럼 한 길 만을 이어온 윤도제작자 중요무형문화재 제1103대인 김종대 부친에 이어 윤도 제작 전수조교 김희수 처사님이다.  

-성내면 산림리 제성산을 배산으로 윤도장전수관이 있다. 전수관에는 윤도장 집안대대로 내려오는 가보인 자연자석이 있다. 이 자연자석이 없으면 윤도장의 침을 만들 수 없을 만큼 중요한 보물이다. 나침반의 침을 이 자연 자석에 30분을 붙여 놓으면 자성(磁性)이 생겨 나침반이 정확해지고 제성산 거북바위에서 방향을 확인하는 윤도제작의 특수한 입지구성을 알 수 있다.

-획 하나만 틀리면 한 달 동안 공들인 시간들이 물거품이 될 만큼 정확한 각자(刻字)분금은 윤도의 생명만큼 온 정성을 다해야 한다. 또한 옥을 갈아서 분금과 글자에 선명하게 색을 입혀 마무리 단계에 이르는 여정은 마치 실크로드의 여정과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하면 그 마저도 부족한 표현이다. 이러한 여정에 장남으로서 가업을 물려받아야 했지만 많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도장으로 이어야 할 의무감의 축()’은 동요되지 않았기에 생계를 위한 대안으로 인삼농사를 해야 했다.

-고향 선후배의 도움으로 다년간을 거쳐 이제는 제법 든든한 의지처가 되기도 한다. 필자가 엊그제 문화원을 방문했는데, 김희수 처사님이 직원에게 약간 제공된 인삼을 얼떨결에 몇 뿌리를 얻었다. 그 몇 뿌리는 아침 보약 한 첩으로 장인의 혼을 마신 듯했다. 지금도 봄과 여름이면 윤도 만드는 일과 틈틈이 채소밭 하우스에서 김희수 전수교육조교의 상추 뜯는 모습(촬영 영상)이 생각난다. 그리고 필자가 2007년 김종대 부친과 면담할 때, 하우스에 물을 주시면서 지금 바쁜디라고 하신 말씀과 다르지 않게 김희수 처사님의하루가 바쁘다라는 표현이 오버랩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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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운사 육법공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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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제작실 옆 다실>
 

윤도 만드는 일은 숙명  

-김희수 윤도장 전수교육조교는 윤도 만드는 일은 숙명이라고 할 정도로 300여년을 이어오는 세월동안 나침반처럼 한 결 같이 이어온 장인의 길을 걸어왔다.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 윤도, 이 윤도의 맥을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잇고 있지만 우리의 전통의 맥을 살리고 있는 전승자로써 보람을 느끼고 숙명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김희수 처사님이 윤도장이 된 건 사명감이 앞섰다. 많은 갈등 속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뒤를 잇는 의무감은 가업을 잇고 있다는 것에 부친도 흐뭇해하신다. 부자의 윤도제작 모습은 우리의 자랑으로 수많은 시간을 지나 윤도제작이 오직 고창에서 유일하게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공경을 아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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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 제작실 옆 전수자 김희수 처사님이 향을 사르는 공간> 

      

참고자료

윤도장, 국립문화재연구소/<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


댓글목록

원명심님의 댓글

원명심

무상님!
윤도 장인을 만나다 2 까지 고생하셨습니다.
항상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함께 하시길 .....

주소 : (56452) 전북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전화 : 063-561-1422, 1418(종무소)팩스 : 063-561-1127 이메일 : seonunsa@hanmail.net / master@seonuns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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