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김은성의 내 인생의 책]④ 상춘곡 | 윤대녕 선운 2017.12.31
첨부화일 : 없음

ㆍ인연의 조각들

[김은성의 내 인생의 책]④ 상춘곡 | 윤대녕

15년 전, 고창 선운사에 처음 갔다. 싸리눈 날리던 추운 봄이었다. 후원의 동백나무숲은 아직 꽃망울만 성성했다. 같이 간 사람과 머잖아 또 오자고 했다. 윤대녕의 단편소설 <상춘곡>에는 선운사 만세루 이야기가 나온다. “선운사가 백제 때 지어졌으니 만세루도 아마 같이 맨들어졌것지. 그러다가 고려 땐가 불에 타버려 다시 지을라고 하는디 재목이 없더란 말씀이야. 그래서 타다 남은 것들을 가지고 조각조각 이어서 어떻게 다시 맨들었는디 이게 다시없는 걸작이 된 거지.”

폐허처럼 남은 시커먼 기억과 불쑥 마주칠 때면 <상춘곡>이 꽂혀 있는 책장 앞을 서성이게 된다. 만세루 기둥은 정말 타고 남은 것들을 조각조각 잇대고 기운 모양으로 서 있을까? 혹시 완전히 망가진 사람인연도 만세루처럼 회복될 수 있을까? 미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부대끼던 시절 <상춘곡>을 읽고 큰 위로를 받았다. 매일 만나던 사람을 다시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한번도 만나지 못하던 사람을 매일 만나게 되기도 하는 게 사람의 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신비로운 세상에서 잠시라도 같은 시간에 함께 있어준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지나간 인연을 곱게 여미는 자세를 가다듬기도 한다. 

<상춘곡>은 나의 오랜 명상록이다. “어느 기둥 하나 그야말로 온전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미 사위가 어두워진 경내에서 나는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고 서 있었습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나는 보게 됩니다. 만세루 안에 하얗게 흐드러져 있는 꽃의 무리를 말입니다.”

해마다 그래 왔던 것처럼 봄이 오면 선운사에는 동백이 핀다. 돌아오는 봄에는 만세루에 기대앉아 그 눈부신 풍경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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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2272226005&code=960205#csidx0f900d1cafddd3695aa5afd3819527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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