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송창식과 선운사…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동백꽃 2017/02/04 선운사 2017.02.05
첨부화일 : 없음

송창식과 선운사…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동백꽃

  • 이주엽 작사가

 

입력 : 2017.02.04 03:02

[이주엽의 이 노래를 듣다가]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송창식 '선운사' 중

동백은 봄의 순교자다. 훼절(毁節)을 거부하고 한순간 꽃송이가 툭 져버린다. 천천히 시드는 법 없이, 생(生)의 절정을 제 무덤으로 삼는다. 바람 부는 어느 봄날을 기다렸다 그 찰나에 결연히 제 몸 전부를 맡긴다. 얼마나 열렬한 믿음의 생애였기에 그 선홍빛은 돌아보지 않고 외마디로 지는 걸까.

저 비감한 동백의 낙화를 두고 절세의 가객(歌客) 송창식이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이라는 절창을 남겼다. 그가 1986년에 발표한 노래 '선운사' 덕분에 한국 가요는 동백을 재발견했다. 동백의 이미지가 희생, 인고, 순정(이미자 '동백 아가씨')의 전근대적 여성성을 벗고 비로소 현대적 시정(詩情)을 입었다. 이 노래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분명한 시인 최영미는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시 '선운사에서')"이라는 또 다른 절창으로 화답했다.

송창식 노래로 천년 고찰 선운사는 종교 문화적 공간에서 새로운 심미적 공간으로 바뀌었다. 노래가 우리 가슴으로 들어온 후, 동백은 이전과 다르게 피고 진다. 그러니 제대로 동백을 보려면 저 먼 남쪽 바다 통영이나 여수쯤이 아니라 고창 선운사로 가야 한다. 그것도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다. 그 바람을 따라 동백 숲에 당도하면, 서럽고 아득한 낙화가 시작될 것이다.

가슴이 시려올 그 꽃무덤 앞에서, 이별을 앞둔 사랑은 다시 길을 잃고 헤맨다. 가객은 떠나려는 사랑을 동백 숲 앞으로 기어코 불러온다. 그리고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것"이라고 고개 떨군다. 그 간절한 희망처럼, 낙화의 슬픔 속에서 사랑은 다시 만나는가. 재회한 사랑은 어느 세월의 동백으로 다시 필 것인가.


송창식
'선운사'는 송창식이 왜 비범한 싱어송라이터인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노래다. 가사는 낙화와 이별을 담은 한 편의 시 같으나, 전통적 선율에 기댄 음악은 다소 능청스러우면서도 여유가 넘친다. 슬픔을 깊게 하기는커녕, 생뚱맞은 느낌마저 드는 여성 코러스는 또 어떤가. 아카펠라에 이어 단출한 기타 반주로만 이어가는 노래는 시종 무거움과 가벼움이 교차한다. 그러면서 청승에 빠지지 않게 가벼움이 슬픔을 뒤에서 슬며시 잡아당긴다. 이것이 노래의 핵심이다. 그러고도 노래 마지막엔 결국 눈물 한 방울 떨구게 한다. 그 절묘한 정서적 균형을 잡는 것은 전적으로 송창식의 탁월한 가창력이다.

가요사에서 그 대체재를 찾기 힘든 송창식의 가창력은 문화유산급이라 할 만하다. 성악으로 훈련된 호쾌한 발성에 깊은 인문적 향기, 그리고 키치적 정서까지 아우르는 자유분방함을 더해 한 시대를 종횡했다. 그의 목소리를 빌리면 아무리 장난스러운 언어라도 경청해야 할 것으로 바뀌었다. 70년대 청년 문화의 기수 중 그만큼 전 대중의 지지를 받은 가수는 없다.

그러므로 송창식 노래는 그 자체가 한 장르다. 포크가 바탕이지만, 트로트와 전통 음악까지 거리낌 없이 넘나든 그를 한 장르로 구속할 수 없다. 노래의 문학적 깊이를 어느 누구보다 천착하다가 갑자기 그 문학성을 전복하는 대안적 감수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는' '사랑이야' 등은 전자에, '왜 불러' '가나다라'
'담배 가게 아가씨' 등은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대중음악사 좌표에 쉬 잡히지 않는 그 자유로운 영혼이 송창식이다.

지금쯤 선운사 동백은 겨울을 견디며 붉은 꽃망울을 품고 있을 것이다. 이른 봄 동백이 눈물처럼 후두둑 지고 나면, 봄도 크게 기울 것이다. 홀연히 마침표를 찍은 동백은 어느 내세로 흘러갈 것인가. 들어줄 이를 잃은 법당 풍경 소리만 외로우리라.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03/20170203015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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