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시여, 영가님들을 잘 보살펴 주소서.”
“부처님이시여, 영가들의 유족들이 슬픔을 거두고 각자의 삶을 성실히 이루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2월15일 광주 무각사 지장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49일을 맞은 이날, 500여명의 염불소리가 하나 되어 울려 퍼졌다.
희생자 179명의 극락왕생을 위한 기도는 곧 남은 이들의 치유를 위한 기도였다. 사부대중은 영가들이 덧없는 육신의 무게를 내려놓고 평안한 극락세계로 갈 수 있기를, 그리고 유가족들이 아픔을 거두고 일상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한마음으로 발원했다.

조계종(총무원장 진우스님)은 이날 오후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합동 49재’를 봉행했다. 금산사, 백양사, 화엄사, 송광사, 대흥사, 선운사 등 호남지역 교구본사와 광주 무각사가 함께 주관했다.
이날 49재는 참사 직후부터 40여 일간 하루 세 번 현장을 찾아 추모기도를 올린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의 원력이 회향하는 날이기도 했다.




법당 안은 깊은 침묵이 감돌았다. 49재에 앞서 유가족 200여명은 희생자들의 위패와 영정 44위를 영단 위에 모셨다. 친구들 영정은 생전 함께 어울리던 모습처럼 나란히 옆에 놓았다.
조계종 어산종장 덕림스님을 법주로 봉행한 이날 법회는 대령관욕 의식으로 시작됐다. 영가를 씻기는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다라니 기도가 법당을 장엄하게 채웠다. 스님들은 차분한 음성으로 염불을 합송했고, 비불자가 대다수인 유족들은 서툰 합장으로 애절한 마음을 전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총무부장 성화스님이 대독한 추모사에서 “하늘과 땅 위의 모든 이들이 슬픔에 젖었다”고 애도했다. “하지만 생사일여(死生一如), 부처님께서는 ‘우리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하셨고 당신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고 우리도 당신 곁을 떠나지 않았다”며 “유족들은 슬픔 거두시어 다음 시절인연이 오면 다시 만날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깨달으시길 기원한다”고 위로했다.
이어 영가들을 향해 “태어나는 것은 허공에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죽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지는 것과 같아 삶과 죽음의 오고감도 이와 같다”며 “이제 허망하고 덧없는 육신을 벗어 버렸으니, 생의 아쉬움 뒤로하고 마음 편히 생전 지은 업장을 다 소멸하고 속히 이승으로 돌아와 영생의 꽃을 피우소서”라고 애도했다.

고 김무오 군의 누나 김샤리씨는 유가족 대표로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김샤리씨는 “49재 지내는 오늘은 네가 여기를 떠나 더 좋은 곳으로 출발하는 날이라고 한다”며 “남은 인연 훌훌 털어버리고 엄마가 먼저 갔던 그 길로 잘 가야한다. 여행을 좋아하던 내 동생, 먼저 여행갔다 생각하고 견뎌보겠다”고 전했다. 이어 “모두 고통 없고 아픔 없는 곳으로 훨훨 날아가라”며 “49재를 열어준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이날 법회는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비는 동시에 유가족들의 치유를 위한 시간이었다. 유가족 김수길씨는 “아직도 실감나지 않지만 아픔 잊고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며 “여전히 옆에 있는 것 같은 처남, 사랑한다. 고맙다”고 전했다.
나눔의 시간도 이어졌다. 다르다김밥 광주총괄대표는 유가족 200인분 김밥을 기부했다. 황지훈 대표는 “우연히 무각사 49재 소식을 들었고 희생자분들이 가까이에 있는 분들처럼 느껴져 힘을 보태고 싶었다.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며 “아픔을 안고 살아갈 유가족분들에게 같이 힘내서 살아가자고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정치권에서도 추모 메시지를 전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대독한 조사에서 “유가족들의 일상 회복을 돕겠다”고 했으며,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김정현 광주시당위원장이 대독한 조사에서 “참사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 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했다.
광주 무각사 주지 청학스님은 이날 사부대중을 대표로 발원문을 낭독했다. “부처님이시여, 영가님들을 잘 보살펴주소서. 영가들의 유족들이 슬픔을 거두고 각자의 삶을 성실히 이루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49재는 희생자들의 위패를 불로 태우는 소전의식으로 마무리됐다. 500여 사부대중은 무각사 앞마당에서 품에 안고 걷던 영정과 위패를 내려놓았다. 이어 타오르는 불꽃 속으로 사라지는 위패를 바라보며 한 생의 인연을 회향했다.







이날 49재에는 선운사 주지 경우스님, 금산사 주지 화평스님, 백양사 주지 무공스님, 선암사 주지 대진스님, 송광사 주지 무자스님 등 교구본사 주지 스님과 총무원 총무부장 성화스님, 사회부장 진경스님, 기획실장 법오스님, 조계종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 묘장스님, 아름다운동행 상임이사 일화스님 등이 스님이 참석했다. 또 중앙중회의원 태효스님, 우석스님, 재안스님, 향문스님, 시공스님, 덕운스님 등이 함께했다. 광주불교연합회장 소운스님과 조계종 사회노동위원장 지몽스님을 비롯한 위원 스님들도 자리했다.
이밖에도 정청래 국회 법사위원장, 김영록 전남도지사, 김정현 광주시당위원장, 조인철 의원, 정준호 의원, 이규민 조계종 종책특별보좌관 등이 500여명이 참석해 헌화했다.